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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玄의 노래… 단일팀 한번 더

손장훈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4-24 13:14

현정화, 탁구 남북 단일팀으로 세계선수권 우승한 지 21년… 그날, 그 이후
현정화(43) 대한탁구협회 전무는 21년 전 일을 어제처럼 기억했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왔는데 벚꽃이 활짝 핀 화창한 봄날이더라고요. 기분이 마냥 좋았죠."

지난 1991년 4월 24일은 한국과 북한의 탁구 단일팀이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개막일이었다. 당시 단일팀의 우승 과정을 그린 영화 '코리아' 개봉(5월 3일)을 앞두고 현정화 전무에게 '실화(實話)'를 직접 들었다.

일본 지바시에 있는 니혼 컨벤션센터. 가슴에 한반도기를 단 선수들이 셔틀버스에서 내리자 사방에서 카메라가 몰려 들었다. 출입구는 수백명의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세 나이로 올림픽 금메달(1988 올림픽 여자 복식)을 목에 건 '강심장' 현정화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오전 9시에 시작된 프랑스와의 개막전. 북한 리분희가 단일팀의 첫 단추를 끼웠다. 지난 세계선수권 단식 준우승자답게 중국계 선수 왕샤오민을 2대0으로 가볍게 요리했다. 한 달 넘게 함께 땀을 흘린 언니(당시 23세)가 선전하자 현정화(당시 22세)는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두 번째 단식에 나선 현정화는 쿠바를 2대0으로 꺾었다. 현정화와 리분희는 복식(2대0 승)에서 멋진 콤비 플레이를 선보였다. 손발을 맞추기 위해 모였을 때만 해도 서먹서먹했던 둘이 단일팀에 역사적인 승리(3대0 승)를 안겼다.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분희 언니'하고 부르니까 '정화 동무'라고 그러더라고요. 말도 없이 연습만 하다가 훈련시간 끝나면 곧장 방으로 돌아갔어요. 감시하는 사람도 있고 왠지 경계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리분희는 합숙훈련 동안 이상하게 쉽게 지쳤고,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현정화는 "같이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답답했다"며 "차라리 따로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이유를 수소문한 현정화는 당시 조남풍 북한 대표팀 감독에게 '리분희가 B형 간염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현정화는 리분희를 친언니처럼 돌봤다. 식당에 내려오지 않으면 밥을 챙겨 방에 직접 배달해줬고, 숙소 밖에서 초밥 등 '특식'을 사다주기도 했다. 현정화의 배려에 리분희도 마음을 열었다. 둘은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매처럼 지냈다.

한국과 북한이 단일팀을 이뤄 나갔던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21년 전 4월 24일 개막했다. 당시 선수로 출전했던 대한탁구협회 현정화 전무는“올림픽 때도 안 떨었는데 그때는 엄청나게 긴장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자동차 있냐', '돈 얼마나 버냐'에서부터 남자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했죠. 분희 언니한테 북한 남자 대표팀 김성희와 사귄다는 얘기도 듣고 저는 '북한 남자 선수 한 명이 매번 내 옆에서 앉으려고 하는 걸로 봐서는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다'고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이전 대회 단체전 준우승국 한국과 5위 북한이 힘을 합치니 파죽지세였다. 10전 전승으로 순조롭게 결승에 올랐다. 단일팀은 대회 엿새째 날이었던 29일 단체전 9연패를 노리던 '최강' 중국과 우승 맞대결을 펼쳤다. 첫 번째 단식에서 북한 유순복이 세계 랭킹 1위 덩야핑을 2대1로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현정화 전무는 "그때 (유)순복이가 약 먹은 것처럼 공을 쳤다. 한 포인트를 따내곤 한 40~50㎝씩 점프를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유순복은 게임 스코어 2―2로 맞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가오준을 2대0으로 누르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제가 마지막 경기에 나가서 직접 뛰었으면 느낌이 덜 했을 거예요. 벤치에서 순복이 경기하는 걸 가슴 졸이면서 보니까 우승 확정될 때 더 극적이고 짜릿하더라고요."

2년 전 남북 탁구 단일팀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현정화 전무는 그때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동분서주했다. 유럽 선수로 나올 외국 배우를 찾기 위해 영국탁구협회에 직접 의뢰했고, 6개월간 하루에 3~4시간씩 하지원·배두나 등 주연배우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

'현정화' 역할을 맡은 하지원에게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스턴트 배우를 연기하고 액션영화에 출연했던 하지원이었지만 금세 십수년간 탁구를 해온 선수의 자세를 비슷하게 흉내 낼 순 없었다. 하지원은 일주일 만에 "탁구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차 의사를 밝혔다.

현정화 전무는 그날 밤 하지원과 따로 술을 마시며 "대충하지 않는 것같아 오히려 보기 좋다. 내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진도가 빠르다"고 달랬다. 그녀의 말에 자신감을 회복한 하지원은 남은 기간 동안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다.

"(하)지원이는 나중엔 남자 대표팀 유남규 감독이 '잘 친다'고 칭찬할 정도로 탁구가 늘었어요. 영화 준비하면서 사우나도 같이 가고 해서 지금은 언니, 동생으로 지내요.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 덕분에 언니(리분희) 하나 생겼는데, 21년 뒤에는 동생 한 명 더 얻은 셈이죠."

1991년 세계선수권이 끝난 뒤 현정화 전무는 리분희와 두 번 더 만났다. 한 번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또 한 번은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이었다. 그러곤 19년간 재회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한국과 북한은 한 번도 세계선수권 단체전 정상에 서지 못했다.

현정화 전무는 "남북 단일팀을 한 번 더 추진할 계획"이라며 "분희 언니하고 당시 단일팀의 주역들도 한자리에 모으고, 중국도 다시 한 번 꺾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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